
청 건륭제 때 해마다 전쟁을 한데다가 황제가 여섯 번이나 강남을 유람하는 바람에 국고가 바닥이 나게 되었다. 그런데다가 관리의 탐욕과 낭비가 날로 심해져 국세(國勢)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때 경성에서는 소설 『홍루몽』이 민간에서 널리 유행했는데, 그 책의 지은이가 바로 조설근(曹雪芹)이었다.
조설근은 원래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증조할아버지 조새(曹璽)는 강희제의 신임을 받았던 대신이었으며 나중에는 남방으로 가 강녕직조(江寧織造)의 직책을 맡았다. 강녕은 남방에서 부유한 고장으로, ‘직조’는 황족들의 의복을 만드는 일을 책임진 벼슬로 수입이 좋았다. 조새가 죽은 다음에는 조설근의 할아버지 조인(曹寅)이, 그 다음에는 조설근의 아버지 조부가 이 자리를 세습했다. 조설근의 집은 이렇게 3대째 직조관 벼슬을 지냈으며, 그동안 가산은 해마다 늘어 남방의 명문 가문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옹정제 대에 이르러 조설근의 가문은 황실 내부의 갈등과 쟁투에 연루되었고, 아버지 조부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가산을 몰수당했다. 그때 조설근의 나이가 열 살, 철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으로, 한순간에 가난해진 환경은 조설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벼슬을 잃은 조설근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북경으로 갔으나, 집안 살림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고 재난은 해마다 빠지지 않고 그들 가족을 덮쳤다.
아버지가 죽자, 그나마 북경에서도 살 수 없게 된 그들은 북경 서쪽의 교외로 이사를 갔다. 겨우 얻은 낡은 집에서 조설근은 글을 읽었으며, 죽으로 연명할 때가 많았다. 북경 교외에서 살다 보니 조설근은 빈곤한 백성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장편소설 『홍루몽』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