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르세는 역이 아니다
전시실 문턱에서 오르세 미술관이 생겨나는 과정과 컬렉션을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바로 투어를 시작합니다.
2. 농촌으로 되돌아가자
맨 먼저 이발소 그림으로 너무 친숙한 밀레와 이름조차 아주 낯선 도미에 전시실을 보여드립니다. 그 다음 이국정취의 그림 전시실을 거쳐 농촌을 소재로 그린 그림과 숲을 그린 풍경화가 걸린 전시실을 둘러봅니다.
그런데 농촌 화가 가운데 어떻게 밀레가 가장 유명할까요? 또 어떻게 사생이 가능해질까요?
3. 이상형의 나체를 그리면 살롱전에 걸리고
바르비종파 전시실을 본 다음 중앙복도로 빠져나옵니다. 맞은편 전시실 먼발치에서 아카데미파 화가가 그린 비너스를 한 점 소개합니다.
왜 당시에 살롱전에 입선하고 미술학교 교수 자리도 차지하고 살롱전 심사위원으로 떵떵거리던 그들은 지금 이름이 희미해져가고 있을까요?
그런 다음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혁신적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사실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작품들을 찾아 대장정을 떠납니다.
4. "있는 그대로" 그리면 낙선전으로 간다.
바닥층에서 "왜 현대적인가?"라는 관점에서 쿠튀르([쇠퇴기의 로마인들])와 쿠르베([오르낭의 매장]과 [화가의 아틀리에])를 대조하여 해설합니다. 특히 "풍속화를 역사화 차원으로 끌어올린" 쿠르베의 사실주의를 자세하게 알아봅니다. 어떻게 풍경화와 풍속화가 19세기 중반에서야 프랑스에서 제대로 자리잡을까요?
시작부터 사실적이고 독창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마네, 세잔, 모네, 바지유, 드가의 초기 작품을 소개합니다. 어떻게 마네의 작품은 낙선전에서도 스캔달을 불러일으켜 감시 대상이 되었을까요?
왜 졸라는 친한 친구 세잔에 대해 한번도 좋은 평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제 로댕 이전의 최고의 조각가 카르포의 [세계 방방곡곡]과 [춤]을 뒤로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갑니다.
왜 "사진술"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일본풍"은 서양화가들한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5. 인상주의의 전당에서 혁신적인 작가들과 만나요
꼭대기층이 그야말로 오르세의 심장부로 인상주의의 전당입니다. 시대별, 작가별로 보기 좋게 재배열된 전시실을 차례로 지나면서 수많은 인상주의 걸작품들을 감상합니다.
바닥층에 이어 마네, 모네, 드가, 세잔이 다시 나오고 팡탱라투르, 카유보트,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리, 모리조, 쇠라를 비롯하여 19세기 후반의 혁신적인 작가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물론 인상주의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기에는 서로 개성이 뚜렷하고 독자적인 작가들이지요.
마네 동생과 결혼한 모리조는 마네의 애인이었나요? 드가는 화가인가요 조각가인가요? 르누아르도 풍경화를 그렸나요? 잊혀진 작가 모네는 어떻게 해서 재발견될까요? 가장 고전적인 생각을 가진 세잔이 어떻게 가장 혁신적인 작가가 될까요? "동시대비의 원칙"이 뭔가요?
과학적인 실험결과를 미술에 응용한 신인상주의 전시실을 마지막으로 꼭대기층을 떠납니다.
6.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늦깎이가 독창적이다!"
꼭대기층을 내려가기 전 카페 바깥쪽 통로에 앉아 반고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쉽니다. 그런 다음 2층에 자리잡은 반고흐와 고갱 전시실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옵니다.
미술수업에 늦게 입문한 반고흐나 고갱이 대표적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데, 작가의 삶과 작품은 어떤 관계를 맺을까요? 어떻게 반고흐의 작품은 수많은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까요? 반고흐는 왜 노란색을 많이 쓸까요? 왜 고갱이 유럽을 등지고 타이티섬으로 갔을까요?
오르세에서 가장 인기 높은 반고흐와 고갱 전시실을 돌아 나와 복도에서 로댕의 조각을 소개하고 하이라이트 여정을 마칩니다. 로댕이 살았을 때 [발자크상]은 청동으로 제작되었나요?
투어가 끝나고 덧붙여서 볼 만한 로트렉, 상징주의, 나비파 등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 곳과 하이라이트 코스에서 지나친 아카데미파 전시실을 알려줍니다.
[오르세 미술 기행]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